한국 전통차 브랜드의 글로벌화 성공 사례
전통차,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한국 전통차는 오랜 역사와 깊은 효능, 자연 친화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브랜드화’에 실패한 산업군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산업 구조는 영세했고, 유통은 제한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소비자와 감성적으로 연결되는 스토리텔링과 마케팅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일부 전통차 브랜드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면서, 전통차의 가능성은 다시 조명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차를 파는 기업’이 아니라, 한국의 자연과 문화를 음료로 번역한 브랜드들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국내 전통차 브랜드 중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하거나 의미 있는 확장을 이룬 대표 사례들을 중심으로, 무엇이 성공을 가능하게 했는지, 향후 전통차 산업이 배워야 할 전략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공 사례 1: 오설록(OSULLOC) – 제주에서 세계로
브랜드 배경
‘오설록’은 1979년 설립된 아모레퍼시픽 계열의 티 브랜드로, 제주도에서 직접 녹차를 재배하고 가공·판매까지 이어지는 수직 통합 구조를 갖춘 대표적인 한국 차 브랜드입니다. 오설록은 전통차라기보다는 녹차 중심 브랜드로 출발했지만, 그 안에는 감잎, 작설, 우전차 등 다양한 한국 고유의 차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로벌 전략
- 프리미엄화 전략: ‘제주의 청정 자연’을 콘셉트로 삼아 고급 이미지 구축
- 브랜드 미학: 유니크한 패키징, 제주 차밭 사진, 차 문화관 운영 등으로 감성 자극
- 온라인 유통 강화: 아마존, 미국 자체몰, 싱가포르/일본 백화점 진출
- K-뷰티 연계: 아모레퍼시픽의 글로벌 브랜드와 연계한 마케팅
오설록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차 문화’를 수출하는 브랜드 모델로 정착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티살롱을 오픈하는 등 오프라인 확장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성공 사례 2: 티이스트(TEA’STONE) – 현대적 한방차의 재해석
브랜드 배경
티이스트는 한방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젊은 층에게 어필하는 전략을 통해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룬 스타트업 브랜드입니다. 감초, 생강, 계피, 진피 등 전통 약초를 ‘티블렌딩’ 방식으로 재조합하고, 감각적인 패키징과 영어 이름 중심의 브랜딩으로 해외 유통에도 대응할 수 있는 브랜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글로벌 전략
- 건강 효능 기반 블렌딩: 수면, 다이어트, 면역력 등 테마별 전통차 구성
- 감각적 디자인: 한방 재료를 세련되게 재해석한 일러스트와 색상
- 해외 편집숍 입점: 일본·홍콩·싱가포르 일부 백화점 입점 성공
- 디지털 기반 글로벌 마케팅: 인스타그램, 틱톡 중심의 짧은 건강 영상 콘텐츠로 공략
티이스트는 전통 한방차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물며, ‘마시기 좋은 건강 루틴’으로의 정체성 확립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향후 전통차 브랜드가 지향해야 할 소비자 친화형 방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성공 사례 3: 하동녹차·보성녹차 지자체 브랜드의 해외 진출
배경 및 특징
하동, 보성, 제천, 문경 등 전통차 재배지는 각각 지리적 특산품 지위를 바탕으로 지역 브랜드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특히 하동녹차는 유네스코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록되었으며, 보성은 매년 국제녹차엑스포를 개최하며 해외 바이어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전략
- 지자체 주도 수출 확대: 농식품부·aT센터 연계 수출 박람회 참여
- GI(지리적 표시제) 기반의 품질 인증 확보
- 해외 공동브랜드 개발 시도: ‘Korean Tea’ 공동 상표 시범 운영
이러한 공공주도형 브랜드 전략은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지만, 향후 전통차의 지역성과 글로벌 트렌드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성공 요소 분석: 무엇이 전통차의 글로벌화를 만들었는가?
1. 기능성 중심의 소비자 문제 해결형 포지셔닝
단순히 “좋은 차입니다”가 아니라, “수면에 도움, 스트레스를 낮춰줍니다”처럼 명확한 효능 중심 콘텐츠를 제시한 브랜드가 강했습니다. 이는 제품에 대한 신뢰와 반복 구매로 이어집니다.
2. 스토리텔링과 문화 콘텐츠화
제품 외형만 고급스럽게 만든 것이 아니라, 제품에 얽힌 지역 스토리, 문화, 역사, 철학을 녹여낸 브랜드가 해외에서 더 큰 반응을 얻었습니다. 오설록이 제주도를 브랜드화했듯, 다른 지역도 ‘문화가 있는 차’로 포지셔닝할 필요가 있습니다.
3. 글로벌 감각의 디자인·언어·채널 활용
젊은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선 단순히 한글 기반이 아닌 영문 병행 표기, 인스타그램/틱톡 기반 마케팅, 모바일 최적화 이커머스 채널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티이스트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정리
한국 전통차 브랜드의 글로벌화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아직 대형 글로벌 히트 브랜드는 부족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사례들은 무카페인, 기능성, 감성 콘텐츠, 지역성, 디자인, 그리고 디지털 전략이 결합될 때 전통차도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으로의 전통차 산업은 단순히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소비자의 일상 속에 어떻게 그 가치를 녹여낼 것인가에 따라 글로벌 브랜드로의 확장 가능성이 결정될 것입니다. 한국의 전통차는 이미 충분한 스토리와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가치를 세계에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전략적 실행뿐입니다.
이러한 개별 브랜드의 성공을 일회성 사례에 그치지 않고 산업 전반의 성장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정책적 지원과 산업 연계 구조 개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전통차 기업은 영세한 규모로, 자체적으로 해외 인증을 준비하거나 콘텐츠 마케팅 인력을 운용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정부·지자체·농식품 유관 기관이 연계하여 글로벌 진출 지원 플랫폼, 인증·포장·수출절차 대행, 현지 바이어 매칭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전통차 브랜드가 단순 식품을 넘어 ‘K-웰니스 콘텐츠’로 산업군을 확장할 수 있도록, 다도 체험·차 명상·한방 요법 등과 연결된 복합문화 전략도 함께 기획돼야 합니다. 전통차는 그 자체로 뛰어난 제품일 뿐 아니라, 한국의 자연, 철학, 의학, 정서를 담고 있는 종합 콘텐츠입니다. 이 가치를 보다 전략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전통차는 충분히 ‘마시는 K-컬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